관창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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작성일 22-10-04 13:26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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관창에관하여 , 관창자연과학레포트 ,
신라의 화랑 `관창`의 삶에 관한 내용입니다. 김유신의 열전을 보면 …(To be continued )
관창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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레포트/자연과학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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신라의 화랑 `관창`의 삶에 관한 내용입니다. 무열왕은 관창의 용전(勇戰)을 가상하여 급찬(級:신라 17관등 중의
제9등급) 벼슬을 추증(追贈)하고, 예를 갖추어 장사지냈다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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다.관창에관하여


<관창의 생애>
신라 무열왕(武烈王)때의 화랑(花郞). 신라의 좌장군(左將軍) 품일(品日)의 아들이
다. 어려서 화랑이 되어 널리 사람들과 교제하면서 수련을 쌓았으며, 15세 때 이미
말 타고 활 쏘는 데 능하여 무열왕(武烈王) 김춘추(金春秋)에게 천거되었는데, 왕은
그를 부장(副將)으로 삼았다. 신라군은 관창의 분전과 용기에 고무되어 모두 결사의 각오로 싸워 마침내 백제
군을 대파하였다. 660년 신라가 당(唐)과 합세하여 백제를 칠 때 황산벌에
서 신라군·백제군 사이에 대격전이 벌어졌다.
<관창의 삶 유추하기>
《삼국사기》에 수록된 화랑들의 전기를 보면 이 시대에는 화랑뿐 아니라 낭도나 일
반 병졸에 이르기까지 조국을 지키기 위해서는 목숨을 아끼지 않는다는 무엇보다도 전
사를 명예로 여기는 무사도의 정신으로 가득차 있었던 것을 알 수가 있따 다만, 전쟁
터에 있어서뿐 아니라 일상생활에 있어서도 화랑집단의 성원들은 목숨을 가볍게 여겼
으며, 이러한 무사도는 특히 화랑출신의 장군들이 모범을 보였다. 계백은 그의 목을 벤 후 말안장에 매달아 신라군에게 돌려 보
냈다.
660년 백제를 치기 위한 원정군의 주요한 장수는 김유신을 비롯하여 그의 아우인 흠순
과 품일 등이었는데, 황산벌판의 싸움에서 품일과 김흠순은 신라군의 사기를 드높이
기 위하여 각기 아들인 화랑 官昌과 盤屈을 전사하게 하였다는 대목이 있따 이를 보
았을 때 관창은 김유신의 아우인 품일의 아들이었기에 김유신의 조카였다는 말이 된
다. 물론 관창 역시 그
러하였을 것이다. 그러나 관창은 재차 적진에 돌입하여 용감하게 싸우다
가 다시 포로가 되었다. 이 싸움 중 관창은 단신 적군 속에 돌
입하여 백제의 포로가 되었는데, 계백은 그 어린 소년의 용맹에 탄복하여 죽이지 않
고 신라군에게로 돌려 보냈다.